올 봄 필자는 케이블카를 타고 설악산 권금성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권금성 정상에서 바라 본 울산바위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과거 울산바위를 오를 때마다 매번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산행이었지만 세월이 지나 회상해 보니 고된 등산의 기억 대신 그때를 추억으로 더듬으며 행복해 했다. 같은 맥락에서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의 초등학교 때를 회상하며 ‘그때가 참 좋았지’ 하면서 과거를 추억으로 되뇌며 행복한 미소를 머금는다. 사실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아이가 빨리 컸으면 하고 괴로워했는데도 말이다.

왜 지난 과거의 일은 대부분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되는 걸까? 우리는 부정확한 희미한 기억 정보로 과거의 일을 회상하고, 나머지는 미화시켜 왜곡된 상상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기억을 왜곡해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 자체는 불완전하다. 경험을 하는 시점부터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되고, 이를 머릿속에서 다시 꺼내 회상할 때까지 기억의 프로세스에서 원본이 고스란히 보존되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할 때부터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곤 한다.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되어 저장된 경험은 회상할 때도 의도에 따라 더 좋은 방향으로 재구성된다는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의 재료를 선택해 이야기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뇌의 기억 왜곡 전략은 기억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감을 높여 행복해지고자 취하는 전략이다. 과거의 나, 즉 과거의 기억이 현재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이러한 자아 정체성이 행복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취사선택해서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이다. 결국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에게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의 오이시 시게히로 교수는 기억의 정확도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커플을 모아 2주 동안 설문하며 당일 기분을 측정하고, 2주 후에 그날의 기분이 어땠었는지 다시 기억해보라고 요청했다. 당시의 기분과 나중에 그때를 회상하며 답한 기분을 비교한 결과, 함께 보낸 시간이 즐거웠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경향을 보였다. 시게히로 교수는 단순히 관계의 지속성뿐만 아니라 기억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음에 주목했다. 실제 감정이 그렇지 않았어도 긍정적으로 왜곡된 기억이 관계를 지속시키는 힘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러한 기억의 왜곡은 남녀 관계뿐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사람들은 ‘현실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기억하는가’가 아니라, ‘현실을 얼마나 아름답게 기억하는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불완전한 기억 덕분에 우리의 뇌가 기억을 조작하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찾게 해준다. 그렇다면 선의의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디지털 기기는 정 없는 기억을 담고 있는 것이다. 너무 적나라한 현실보다는 아름다운 추억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경험을 하도록 기억을 포장하는 것이다. 혹여 지금의 현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말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실상은 혼란스럽고 힘들다. 그리고 누구든 현실의 삶은 고달프고 팍팍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거는 생각하기 위해, 현재는 일하기 위해, 미래는 즐거움을 위해 존재한다”는 디즈레일리의 말처럼,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미래의 소중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회상 될 가족 여행의 기회를 가졌으면 어떨까 한다. 힘들 때 마다 가족끼리 도란도란 정겹게 얘기를 나누면서 꺼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 속 추억의 앨범을 하나 더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