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에는 일동삼승(一洞三勝)이라 하여 이름난 승경지 세 곳이 있다. 바로 광주와 담양 경계에서 무등산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소쇄원(瀟灑園), 식영정(息影亭), 환벽당(環碧堂)이다. 호남의 대표적인 명소인 이곳 주변에는 지난 8월부터 주말마다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이른바 ‘풍류 남도 나들이’ 사업이다.

이 사업은 올해 2월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지역행복생활권 공모사업에 광주시, 광주시 북구, 담양군이 함께 참여하여 선정되었다. 올해부터 2018년까지 3년 간 총 2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무등산 자락의 누정을 중심으로 관광기반 구축, 문화관광콘텐츠 개발, 마을공동체 등 자연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한 체험형 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다.

사업 주관부서인 광주문화재단 시민문화관광팀에서는 별도의 사업팀을 꾸려 박종철 감독의 지휘로 현재까지 교육, 체험, 공연, 관광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소쇄원의 경우 매달 보름날에 맞춰 ‘풍류정원 달빛공연’이라 하여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의 신작품 ‘소쇄원사계’를 발표하여 문화관광콘텐츠로써 가능성을 선보였으며, 식영정과 환벽당에서는 명사들을 초청하여 인문학 강의와 선비문화체험에 참여할 수 있어 시민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또한 ‘누정문화제’ 행사의 일환으로 16세기 인물 면앙정 송순(宋純)의 회방연(回榜宴)과 정조(正祖) 때 광주향교에서 시행된 과거시험을 재연하는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사업의 취지에 맞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함께 고민해 볼 문제이다.

먼저 ‘풍류’를 생각해보자. ‘풍류’는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또는 그러한 생활이나 태도’라 사전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주체가 객체에게 과연 ‘풍치있게’, ‘멋스럽게’ 전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다. 주지하다시피 호남은 무등산을 배경으로 ‘계산풍류’(溪山風流) 구현해 왔다. 그 절정의 시기는 16세기로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송강 정철, 제봉 고경명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바로 이 시기에 활동하였다. 이들은 학문 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 조경 등 다방면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이들은 ‘풍류’를 주체가 되어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발산했다.

그 한 예로 양산보(梁山甫)가 세운 소쇄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림이다. 김인후는 ‘소쇄원48영’이라는 연작제영시를 남겨 소쇄원을 단순한 공간이 아닌 문학과 예술이 곁들여져 ‘풍류’의 공간으로 확장시켰다. 소쇄원뿐만 아니라 식영정, 면앙정 등 호남의 주요 누정들이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잘 살리는 것이 바로 ‘풍류남도 나들이’ 사업의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풍류남도 나들이’ 사업의 취지에 적극 공감하면서도 행여 단순한 일회성에 그칠까 하는 부분이 걱정스럽다. 사업의 객체가 되는 시민들이 호남의 선비들이 즐겼던 풍류를 단순한 구경꾼으로서가 아니라 몸소 체험하여 이를 생활 속에서 적용하여 생산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날로 인정이 각박해져가는 세태에서 현대인들은 여유조차 사치라고 생각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이럴수록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여유를 찾는 일이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이다. 남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느낀 생각을 시 한 수, 또는 그림으로도 멋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면 ‘풍류남도 나들이’는 비로소 주체로서 참멋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21세기 풍류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한다. 16세기 호남의 선비들의 ‘계산풍류’를 구현했듯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그에 걸맞는 풍류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21세기 풍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연암 박지원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하여 ‘옛 것을 본받더라도 오늘에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더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하라’고 했다. 자연을 사랑하고 문학예술을 즐기는 생활에서 여유를 잃지 않았던 호남 특유의 풍류에서 참멋을 찾아 이를 오늘날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