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를 생각하면 무등산이 함께 떠오른다. 조선대는 푸른 무등산이 낳아놓은 하얀 이무기 같은 인상이다. 무등산이 커다란 날개로 품고 있는 조선대. 무등산과 조선대는 광주·전남의 랜드마크다. 서정주는 ‘무등을 보며’라는 시에서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고 노래한다. 그 지란이 조선대라는 이미지로 겹쳐진다.

조선대는 건물 외양부터 독특하다. 삼각형 박공으로 잇댄 독특한 건축양식은 지성을 날카로운 톱날로 벼르는 곳이라는 느낌을 자아낸다. 칼 야스퍼스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대학 캠퍼스다”라고 한 말에 빗대어 말한다면 조선대는 호남의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할 만하다.

여기까지는 조선대 출신의 한 변호사가 내심 자랑으로 지켜보는 외견상의 모습이다. 그런데 대학이란 건물의 내부에서 창조하는 콘텐츠가 대학의 이미지와 가치를 창조한다. 조선대가 이에 부합하는지는 더 따져볼 일이다. 여기에 안타까움이 있다. 호남이 자랑하는 오랜 역사를 가진 멋진 캠퍼스에서 생산해내는 가치가 과연 뛰어난 것인가, 내세울 만한 것인가.

조선대는 지난 수년 동안 학내 문제로 시끄러웠다. 그때 캠퍼스에 들어서면 학내 사태에 대한 여러 주장을 내세운 플래카드들이 숨을 멎게 했다. 옆구리에 통증이 오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 ‘파열음’은 대학 구성원과 시민사회의 ‘집단지성’에 의해 현재는 잠잠한 상태이지만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이기도 하다.

대학은 흔히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이라고 한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오늘의 대학 현실에서 케케묵은 말이 되고 말았다. 아무도 그런 눈으로 대학을 보지 않는다. 대학은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우리나라 대학의 위기 상황에서 만일 조선대에서 대학의 주체인 학생, 교직원, 동창회가 뭉쳐 새로운 비전을 세워 밀고 나간다면 조선대는 대학 스스로 외치듯 세계의 대학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조선대는 지금 파도쳐오는 인류 문명의 변화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문명 패러다임이 바뀌는 21세기에 걸맞은 리더를 양성해야 한다. 조선대가 호남의 대학에서 전국의 대학으로, 세계의 대학으로 일어설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그 같은 조선대의 비전 실행을 위해서 인재를 모으고, 학과의 특성화 방안을 모색하고, 교수진을 보강하는 데 파격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대의 시각디자인학과, 경희대의 후마니타스 칼리지 등에서 눈에 띄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이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종합대라 해도 모든 학과를 선두에 올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조선대만의 차별화된 킬러 콘텐츠가 필요하다. 미국 칼아츠(CalArts) 대학은 디즈니랜드가 설립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을 비롯한 예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명성을 자랑한다. 서울에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바로 이 칼아츠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조선대도 칼아츠처럼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남도 문화나 예술을 배우려면 ‘조선대로 가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조선대는 지금보다 더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대는 지난 9월 29일로 개교 70주년을 맞이했다. 새 총장도 선출했다. 이 시점에서 조선대는 단순히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에 머물 것이 아니라 무등산 둥지에서 세계로 날아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발전에 건설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조선대가 비상하고 싶어도 예전처럼 시끌시끌해진다면 이제는 끝이다. 조선대 구성원과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학교 경쟁력이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조선대의 비상하는 날갯짓을 보고 싶다. 조선대는 지금 다시 일어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