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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달님이시여, 저들의 눈을 뜨게 하소서

2016. 09.13. 00:00:00

풀잎에 하얀 이슬이 맺혀 선선한 가을 기운이 느껴진다는 백로(白露)가 엊그제. 이제 한가위 보름달이 세상을 환하게 비출 날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추석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에서 가장 크게 쇠던 명절이다. 밭농사가 많은 이북 지역의 경우 보리가 수확되는 단오절이 추석보다 훨씬 큰 명절이었다고 한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하지 않으면 제사 때 조상이 잡초를 머리에 쓰고 온다”는 옛말이 있다. 굳이 그런 말이 아니더라도 추석이 바로 코앞이니 벌초야 이미 다들 마쳤을 테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런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의문을 갖는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가운데 갖은 음식을 장만하니, 가난에 찌들었던 옛사람들로서는 늘 한가위만 같기를 바라고 또 바랐을 것 아닌가.

옛날 시골에서는 또 이런 말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추석에 일을 하면 홀아비나 홀엄씨가 된다.” 이는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기를 기원하는 일종의 경고성 구비전승(口碑傳承)으로 봐야 할 것 같다.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평소엔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야 했지만, 추석을 맞아 꿀맛 같은 휴식과 풍성한 먹거리에 갖가지 놀이를 즐길 수 있었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으리라.

여하튼 매년 한가위 명절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시 한 편이 있다. ‘추석 무렵’이라는 제목의 시다.

“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뎅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게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이 시를 쓴 이는 뜻밖에도 해남 출신 시인 김남주(1946∼1994)다. ‘전봉준의 혼(魂)을 닮고 브레히트의 백(魄)을 닮고자’ 했다는 시인은 감옥에 있을 때는 주로 저항시를 쓰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서정시를 많이 썼다고 한다. 이제 어느 평론가의 해설을 통해 이 시에 배어 있는 남도의 서정을 더욱 더 진하게 느껴 보자.

“무엇보다도 이 시는 70-80년대에 대표적인 투사 시인으로 불리던 김남주 시의 본령이 사실은 살뜰한 서정과 애틋한 생명 사랑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 줍니다. 이 시에서 ‘자식놈’ ‘고추’ ‘아낙네’ ‘엉덩이’ ‘고추밭’ ‘초승달’의 하모니가 불러일으키는 대지적 상상력은 풍요로운 생산력과 관능적인 생명력을 물씬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세속적으로 야하지 않고 오히려 풋풋하게 느껴지는 게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추석 하면 생각나는 것이 또 하나 있으니 강강술래다. 해남·진도가 고향인 내 친구들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했다. 달 밝은 밤이면 곱게 단장한 여인네들이 수십 명씩 모여 손에 손을 잡고 돌아가며 밤새 춤을 추던 그 황홀한 모습.

한데 강강술래는 왜 대보름에만 추었을까? 달과 여성! 바로 여기에 비밀이 있다. 이들은 농경사회에서 풍요와 생산을 상징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달이 떠오르는 밤에 여성들이 달 모양의 원을 그리며 달을 노래하는 강강술래에는 자연과 인간이 고루 풍요롭게 공존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깃들어 있다.

강강술래 하면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과 명량대첩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강강술래는 이순신 장군이 이를 이용했을 뿐 훨씬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놀이문화라는 것이 정설이다. 강강술래는 또 달빛 아래에서 밤새 노래하고 춤추는, 여인들만의 놀이인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과연 이 놀이엔 오로지 여인들만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일까?

몇몇 민속학자는 이와는 견해를 달리한다. “강강술래는 아주아주 옛날부터 남자들도 함께했으며 달 밝은 밤 ‘음심(淫心)이 동한’(?) 여성들이 짝을 고르기 위한 일종의 구애(求愛) 놀이였다. 강강술래에는 여러 놀이 형태가 복합되어 있는데, 그중에 ‘수건 놓기’ 같은 부속 놀이도 있다. 이를 통해 여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남자를 찍고 그 남자에게 수건을 전함으로써 놀이가 끝난 후 만나자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맘이 맞은 처녀 총각들은 구혼(求婚) 단계에 이르기도 하고, 시집간 여자들은 추석날 친정에 와서 처녀 시절 사귀던 동네 총각이나 유부남 등과 통정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학자들의 논문을 다소 거칠게 요약한 것이지만, 강강술래의 다음과 같은 사설을 보면 대체 그럴 만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저 건너 큰 산 밑에 강강술래/ 동백 따는 저 큰아가 강강술래/ 인물 태도 좋다마는 강강술래/ 눈 주자니 너 모르고 강강술래/ 손 치자니 넘이 알고 강강술래/ 우리 둘이 일허다가 강강술래/ 해가 지면 어쩔거나 강강술래”

예전엔 그렇게 남녀가 어우러져서 흥겹게 춤을 추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라 할 만큼 풍요로웠던 추석인데, 요즘은 왜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 것일까. 아무래도 빈부 격차가 커지고 사회가 양극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명절이 되어도 달을 보며 ‘혼밥’과 ‘혼술’(혼자 먹는 밥과 술)로 마음을 달래야 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젊은이들은 돈이 없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고 늙은이들은 효도·건강·용돈을 포기한다. 늙으나 젊으나 어차피 ‘3포 세대’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서민들의 삶은 신산(辛酸)하기만 한데, 저 아득히 높은 곳에서 호의호식하는 ‘1% 귀족’들은 온갖 잘못을 저지르고도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니 별 하나에 나향욱, 별 하나에 우병우, 별 하나에 진경준·김형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저 탐욕의 화신들은 일일이 이름을 헤아리기조차 어렵구나. 여기에 ‘주옥같은 경제 칼럼으로 우리의 식견을 넓혀 주었던’ 송희영까지도 호명해야 하는 참담함이란! 이처럼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족속들이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으니 서민들로서는 즐거워야 할 추석이 오히려 쓸쓸할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어찌 그리들 욕심이 많은 것일까. 올 추석에도 만약 둥근 달이 뜬다면 개인적인 소원은 접어 두고 이렇게 빌고 싶다. “저들은 저들이 하는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권력과 명예와 부(富)를 모두 움켜쥐고 탐욕에 눈이 멀었습니다. 제발 두이레 강아지 눈만큼이라도 저들 마음의 눈을 뜨게 하소서.”(구상 시인의 ‘기도’ 일부 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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