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포츠/연예
오피니언
weekend
사설
칼럼
이홍재칼럼
기자노트

[이홍재의 세상만사] 30년을 내다보고 씨앗을 뿌린다

2016. 08.26. 00:00:00

상식 하나. 작은 풀꽃들은 왜 무리 지어 피는 것일까. 한 마디로 종족 보존을 위해서다. 장미처럼 화려한 꽃과는 달리 꽃송이가 작고 소박한 풀꽃들은 무리를 지어서라도 크고 화려하게 보여야만 벌·나비를 유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 둘. 편백 같은 나무들은 왜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것일까. 벌레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다. 피톤치드는 미생물이나 벌레들에게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덩치가 큰 사람에겐 농도가 약해 오히려 몸에 좋은 역할을 한다.
올 여름 유난히 덥다. 모기의 입도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가 지났건만, 여전히 덥다. 기록적인 불볕더위라고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8월 평균기온만 봐도 광주의 경우 43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계속되는 폭염, 대지가 펄펄 끓고 있다. 녹음 우거진 시원한 숲이 그립다.
예전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운 도시 하면 대구를 떠올렸다. 오죽하면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는 말까지 있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더위에 지친 시민들은 이제 ‘광프리카’(광주+아프리카)를 말한다. 실제로 올 여름 열대야 관측 일수를 보면 광주가 대구보다 훨씬 많았다. 두 도시의 낮 최고기온도 지난해부터는 광주가 대구보다 높아졌다. 어쩌다 광주가 분지(盆地)인 대구보다 더 펄펄 끓게 됐을까.
계명대 김수봉 교수가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녹화사업으로 대구의 온도가 종전보다 평균 1.2도 내려갔다는 것이다.(논문 ‘기온 분석과 공원녹지의 효과’) 기상청과 산림청도 이에 동의한다. 도시 내 녹지 비율과 숲 면적이 대구보다 크게 낮거나 적은 광주가 여름철 도심 ‘열섬’(heat island) 효과 탓에 점차 뜨거워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반대로 ‘더위의 대명사’였던 대구가 폭염 상위권 도시에서 사라진 것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심어온 2800만 그루의 나무가 ‘자연 에어컨’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쓰레기매립장을 나무 8만 그루의 수목원으로 변신시킨 것 역시 도심 온도를 낮추는 데 한몫했다. 대구의 녹지 비율(61%)은 서울의 두 배나 된다.(광주는 42%)
도시 온도가 농촌보다 높은 이유는 높은 건물과 아스팔트 등에 의해 발생하는 ‘열섬 현상’ 때문이다. 뜨거운 공기층은 도심 상공 300m 높이까지 형성된다. 하지만 나무가 울창한 곳은 시가지보다 상대온도가 낮아 하강기류가 발생한다. 이 차가운 공기가 도심으로 흘러들면서 ‘열섬 현상’을 막는다. 산림학계에 따르면 도시 면적 중 나무가 덮고 있는 비율이 10% 상승할 때마다 0.6도씩 온도가 내려간다고 한다.
“1년 행복하려면 곡식을 심고, 30년 행복하려면 나무를 심을 것이며, 100년 행복하려면 덕을 베풀라는 중국 속담이 있는데 ‘숲속의 전남 만들기’는 30년을 보고 씨앗을 심는 일이다.” 언젠가 이낙연 전남 지사가 한 말이다.
‘가고 싶은 섬 가꾸기’와 함께 ‘숲속의 전남 만들기’는 전남도의 2대 브랜드 정책인데 둘 다 지사 임기 안에는 별로 티가 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따라서 표를 의식해야 하는 선출직 단체장으로서 생색도 나지 않는 이런 정책을 채택했다는 것은 일단 높이 쳐 줄 만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 지사는 이런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었을까? 그것이 궁금하던 차, 고건 전 총리와 허상만 전 농림부장관의 조언을 받아들였다는 말을 최근 도지사 비서실장을 지낸 바 있는 o씨로부터 전해 들었다.
당시 이 지사와 고 전 총리가 나눴다는 대화 내용이 재미있다. “다시 도지사를 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섬을 가꾸고 싶소.” “왜 재임 중에는 못 하셨습니까?” “그때는 먹고 살기도 힘들었지 않소?” 어찌 됐든 이 지사가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인 듯싶다.
이 지사는 기자 시절 일본 특파원을 지낸 일본통이다. 나 또한 자랑은 아니지만 일본을 10여 차례 다녀온 바 있는데 일본에 갈 때마다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어쩌면 그렇게 나무와 숲이 많을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얼마 전 주말을 이용해 다녀온 대마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이 마치 아마존의 정글을 연상케 한다. 섬이 온통 산으로 돼 있는 가운데 특히 다테라산(558.45m)은 세계적으로 진귀한 상록 활엽수 원시림을 자랑한다. 이곳의 나무만 모두 팔아도 일본 전체 국민이 2년은 먹고 산다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본엔 왜 숲이 많을까. 지반이 약해 목조건물이 많은 이 나라에선 첫째 집을 짓기 위해, 두 번째 섬나라인 까닭에 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나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은 인공조림에 나서 편백이나 삼나무 같은 고급 수종을 많이 심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조림에 필요한 예산의 70%는 정부에서 부담했지만 나머지 30%는 대기업들의 기부로 충당했다는 점이다.
토요타·야마하·도시바 등 많은 굴지의 기업들이 지금도 일본의 조림사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김연아 선수가 한창 활약할 때 빙상장에는 늘 한글로 ‘마루한’이라고 쓰인 광고를 볼 수 있었다. 이 마루한이라는 기업 역시 ‘나무 심기’에 거액의 기부를 한 회사다. 마루한의 한창우(85) 회장은 경상도 출신 재일교포로, 일본대지진 때 성금으로 100억 원을 쾌척해 모두를 놀라게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인물을 전남의 ‘숲 가꾸기 사업’에 끌어들일 수는 없을까.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자치단체나 기업에서 도시 숲 가꾸기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숲 가꾸기’를 브랜드 정책으로 내건 곳은 전남도밖에 없다. 나는 기왕에 시작한 김에 이낙연 지사가 마루한의 한 회장을 직접 만나 협조를 구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물론 일본의 재벌 총수를 만난다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지사 혼자서 하기 어렵다면 광주시장이나 경남지사·부산시장과 함께 힘을 합치는 것도 좋겠다. 작은 풀꽃들이 무리 지어서 벌·나비를 유혹하듯이.
숲속에 30분 있으면 산삼 한 뿌리를 먹는 것과 같다고 한다. 숲에는 피톤치드의 향기가 있어 그곳을 걷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두통이나 불면증도 없어진다. 숲에 있는 많은 음이온은 신진대사를 촉진하며 혈액이 깨끗하게 순환되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멀리 내다보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 바로 울창한 숲 말고 무엇이 더 있겠는가.
〈주필〉

기사 목록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