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요. 너무 무서워요”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여성이 있었다. 괜찮다고,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이, 사건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있다는 위로에도 그 여성은 모든 상황을 전부 두렵게만 느끼는 것 같았다. 상담과정은 물론 재판에서 판사가 물어보는 말에도 그저 울먹이기 일쑤였다.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손 모씨의 전 남편은 손씨가 장애급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환심을 산 뒤 결혼했다. 이후 손씨의 전 남편은 그녀의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했다. 그리고는 간신히 자신의 이름만 쓸 줄 아는 손씨를 금융기관에 데려가 신용보증약정을 체결하고 대출금만 가로챈 채 집을 나가 연락이 두절됐다.

손씨는 법원으로부터 날아든 소송서류를 그만 찢어버렸다. 뭔지 모르는 내용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살던 80세 노모조차도 금융기관으로부터 손씨를 상대로 구상금청구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1심 판결이 선고됐다.

손씨의 노모와 형부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항소를 제기한 뒤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아왔다. 소송과정에서 과연 손씨가 신용보증약정의 법률적인 의미와 그로 인해 자신이 부담하게 될 법적인 책임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지에 대한 공방이 이뤄졌다.

결국, 정신감정을 거쳐 그녀의 지적수준과 인지기능에 비추어 볼 때 신용보증약정 및 이에 대한 법률적인 효과 등에 대한 인지를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손씨는 채무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사건이 끝난 뒤 가족들과 함께 다시 공단을 방문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며 그제야 환한 미소를 보였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변호사로 근무하면서 손씨 외에도 처지가 딱한 사람들 많이 봤다. 불편한 몸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월급을 받지 못해 가족들의 끼니를 걱정하던 의뢰자, 남편으로부터 20여 년이 넘도록 폭행을 당한 주부. 그는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아이들을 키우다 병에 걸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의뢰자는 “아이들과 같이 죽는 일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처럼 법을 몰라 세상이 더욱 힘들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이웃들을 많이 만났다.

세상이 힘겨워 마냥 주저앉고 싶기만 한 이들에게는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왜 이제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느냐’, ‘이 악물고 악착같이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식의 질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공단의 모토인 ‘가족처럼 따뜻하고, 친구처럼 편안한’ 격려와 응원과 함께 법률적으로 최선, 혹은 차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힘껏 거들어 주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공단의 법률구조 서비스로 인해 힘겨운 이웃들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이 용기와 희망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뿌듯함은 공단 변호사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이다.

공단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법률구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87년 법률구조법에 따라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설립 30여 년이 되어 가고, 광주를 비롯한 순천, 목포, 장흥 등 17개 사무소가 있음에도 아직까지 공단의 존재를 몰라 법률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공단은 중위소득 125% 이하(3인 가구 기준 447만 원)의 국민에 대해서는 일반 변호사보다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출연기관이 요청한 일부 대상자에 대해서는 전액 무료로 소송을 지원한다. 소송에 필요한 재원은 정부부처나 금융기관 출연금으로 충당한다. 공단에서 지원하는 법률구조 서비스는 민사·가사사건, 형사사건, 행정사건, 개인회생 및 파산· 면책사건, 성범죄·아동학대 등 각종 피해자변호사건, 헌법소원사건 등으로 다양하다.

공단의 법률구조 서비스로 인해 더 이상 이 세상이 두렵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