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시아 문화산업의 허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우리지역에 개관했다. 이후 전당 내외에서는 다양한 콘텐츠의 공연, 전시, 축제 등이 끊임없이 펼쳐지며 시민들에게 색다른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공동화로 침체되었던 구도심이 문화에 힘입어 활기찬 생명력을 되찾고 있는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에는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건물인 민주평화교류원이 있지만 아직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로 개관이 늦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며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과거 5·18민주화운동에 온 몸을 던졌다가 지금은 예술인으로 거듭난 ‘애꾸눈 광대’ 이지현씨다.

애꾸눈 광대 이지현씨와의 인연은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1985년 대학에 복학한 필자는 학내 민주화운동과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 대통령직선제 개헌운동 등을 주도하면서 강압통치와 맞서는 격정의 시대를 보냈다. 이 시기에 학교 밖에서 활동하고 있던 이씨를 알게 됐다. 그는 1980년 5월 민주항쟁과정에서 한쪽 눈을 잃어 안대를 하고 있었고 이후 국가폭력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문화와 예술은 그런 그에게 아픔을 치유해주고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희망이었다. 5·18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까지 맡았던 그는 2010년 오월정신을 세상에 바로 알리고 해학으로 풀어보려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1인극 ‘5·18품바’공연을 시작한 것이다. 2012년부터 이씨는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한 ‘애꾸눈 광대’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오는 8월 24일이면 공연 100회를 맞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 필자는 최근 다시 극장을 찾았다. 이 연극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80년 5월 바로 그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신명나는 광대놀이로 풀어내고 있었다. 관객들은 광대를 통해 울고 웃기를 반복하며 80년 그날을 다시금 떠올렸다. 애이불비(哀而不悲). 슬프나 결코 슬프지 않게 시대의 아픔을 치유와 희망의 노래로 승화시키는 공연이었다.

연극이 끝난 후 필자의 귓가에 “좋은 세상 만들 때까지 죽지 말라는 오월영령들의 뜻이요, 살아서 투쟁하고 오월을 알리는 천지신명의 뜻이로다”는 광대의 말이 맴돌았다. 동시에 이씨와 함께 했던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과 광대의 인생, 그리고 나의 청년시절이 오버랩 되면서 가슴이 울컥해졌다. 광대의 말대로 이씨는 5·18에서 살아남은 자라는 부채의식에서 벗어나 의연하게 살아남은 자로서의 할 도리를 다 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세계문화를 논의할 때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지역의 특성을 알맹이로 삼고 이를 세계 보편의 정서와 접목시켜 현대화 할 때 글로컬(글로벌+로컬)한 문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광주는 유구하게 흘러온 남도 전통문화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응용하는 문화예술 활동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애꾸눈 광대’처럼 5·18민주화운동 역시 광주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대표적 역사문화 자원으로 우리에게는 이를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 나가야할 책임이 있다.

이런 문화예술의 결과물들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돈을 불러 모으고 쇠퇴한 도시를 다시 재생시키는 문화자본 역할을 할 것이다.

이미 문화전당 주변이 이에 힘입어 새로운 활기를 되찾으며 문화부흥도시로의 서막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문화강국을 향한 전진만이 남았다. 문화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21세기, 광주가 글로컬한 문화를 창조해가며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서의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