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의 뇌와 사용후핵연료
2016년 08월 12일(금) 00:00 가가
이 경 진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동전 던지기 게임을 생각해 보자. 어느 한쪽이 나올 확률이 반반인 상황에서, 당신이 지면 500원을 내야 한다면, 이기면 얼마를 받고 싶은가? 600원 정도라고 답한 당신이라면, 너무 양심적인가?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사람은 얻는 이득이 손해보다 2.5배는 되어야 수용한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인간이 생각만큼 이득과 손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얘기다.
인간의 이런 경향을 ‘도마뱀의 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생존본능에 충실한 원시적 두뇌를 의미하는 비유로, 전문용어로는 편도체다. 인간은 편도체 작용 때문에 일상에서도 여러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성만 키우면 손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그럴 수도 없다. 좌뇌와 우뇌를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감성과 이성을 분리시킬 수도 없다.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잘못을 유발하는 환경을 바꾸는 거다.
환경을 바꾸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회피하거나 도망칠 수도 있지만, 결정적 딜레마는 어딜 가더라도 선택과 판단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도마뱀의 뇌를 인정하고 나면 우리가 겪는 수많은 비합리적인 선택의 부담이나 갈등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생각을 바꾸고 문제에 접근하는 경로를 달리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 지역에서 논란이 되는 사용후핵연료(Spent Nuclear Fuel) 문제도 그렇다.
사용후핵연료는 말 그대로 쓰고 난 핵연료이다. 원자력발전은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데, 원자력발전에 사용되었던 다 쓴 우라늄 다발이 사용후핵연료다. 연탄을 태우고 나면 연탄재가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연탄재야 쉽게 처분할 수 있지만, 상당량의 열과 높은 방사성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고준위방폐물(High Level Radioactive Waste)로 분류되는 사용후핵연료는 처리 방법이 단순치 않다. 지구촌이 공동으로 연구하고 엄격한 규제기준과 특별한 관리절차를 국제규정으로 두고 있는 이유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동안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법은 상당 부분 검증되어 운용 중이다. 원자로에서 꺼낸 사용후핵연료를 원전 내 수조에서 5년가량 보관하고 나면 열과 방사능이 상당 부분 저감된다. 이후 건식저장시설로 옮겨 영구처분 전까지 보관한다. 지난 1992년부터 우리나라 월성원전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원전에서 안전하게 관리 중인 시설이다. 정부가 지난 7월25일 고준위방폐물 관리 정책을 확정하면서 우리 지역의 한빛원전에 새로 지어야 한다고 밝힌 시설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지역에서는 정부 계획대로 2035년부터 고준위방폐장을 가동하지 못하면 한빛원전에 새로 짓는 건식저장시설은 영구처분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차제에 한빛원전의 사용후핵연료도 빼 가라는 주장이다.
30년 동안 원전지역 주민으로서 가진 부담감이야 충분히 공감한다. 그동안 손해봤다는 인식, 더 이상 손해보기 싫다는 마음도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연구결과에서 보듯 손해에 대한 두려움은 오히려 더 큰 손해를 유발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심정적 저항에서 한 발 물러나 차분하게 지역의 위험과 이득을 헤아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부가 계획을 마련하고 절차법을 만드는 이유가 근본적으로는 우리 지역의 고준위폐기물을 빼주려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우리나라가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지도 40년이 다 되어 간다. 정책적 기반을 갖추고 법적 근거를 마련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올해로 60년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관련 정책도, 관리법도 없었다. 올해 들어서야 겨우 정부가 정책을 정하고, 어제 관리 절차법을 입법 예고했다. 많이 늦은 만큼 조속한 입법체계 마련으로 구체적 절차를 밟아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사용후핵연료는 각 원전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이번에 법제화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보낸 세월만큼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한다. 한빛원전에 건식저장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11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절차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예고 했다. 지난 7월25일 확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준위방폐물 관리 정책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제시된 셈이다. 이와 관련 이경진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의 기고문을 3차례 싣는다.
환경을 바꾸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회피하거나 도망칠 수도 있지만, 결정적 딜레마는 어딜 가더라도 선택과 판단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도마뱀의 뇌를 인정하고 나면 우리가 겪는 수많은 비합리적인 선택의 부담이나 갈등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생각을 바꾸고 문제에 접근하는 경로를 달리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 지역에서 논란이 되는 사용후핵연료(Spent Nuclear Fuel) 문제도 그렇다.
그런데 지역에서는 정부 계획대로 2035년부터 고준위방폐장을 가동하지 못하면 한빛원전에 새로 짓는 건식저장시설은 영구처분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차제에 한빛원전의 사용후핵연료도 빼 가라는 주장이다.
30년 동안 원전지역 주민으로서 가진 부담감이야 충분히 공감한다. 그동안 손해봤다는 인식, 더 이상 손해보기 싫다는 마음도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연구결과에서 보듯 손해에 대한 두려움은 오히려 더 큰 손해를 유발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심정적 저항에서 한 발 물러나 차분하게 지역의 위험과 이득을 헤아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부가 계획을 마련하고 절차법을 만드는 이유가 근본적으로는 우리 지역의 고준위폐기물을 빼주려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우리나라가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지도 40년이 다 되어 간다. 정책적 기반을 갖추고 법적 근거를 마련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올해로 60년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관련 정책도, 관리법도 없었다. 올해 들어서야 겨우 정부가 정책을 정하고, 어제 관리 절차법을 입법 예고했다. 많이 늦은 만큼 조속한 입법체계 마련으로 구체적 절차를 밟아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사용후핵연료는 각 원전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이번에 법제화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보낸 세월만큼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한다. 한빛원전에 건식저장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11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절차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예고 했다. 지난 7월25일 확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준위방폐물 관리 정책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제시된 셈이다. 이와 관련 이경진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의 기고문을 3차례 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