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광주 북구 시화마을을 방문했다. 시인이 시화마을을 찾는 기쁨은 가슴 벅찬 감격이었다. 늘 고향으로 생각했던 광주였지만 아주 오랜만에 방문하니 많이 생소하고 조금은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시화마을에 들어서자 그 마음이 사라졌다. 민주화의 산실로만 강하게 느껴졌던 광주에서 뜻밖에 시화마을을 만나다니.

문인으로, 시인으로서 봄과 가을 수없이 많은 시화전과 문학기행을 다녔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광주시 문화동 시화마을 같은 건 없었다.

시화마을은 쭉 뻗은 순환도로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왠지 모를 사람 냄새가 나는 듯했다. 안내판에서도 사람의 향기가 느껴졌고 여기저기 시멘트 담벼락에 붙여진 시화들의 시어가 새삼 파란 하늘을 닮아 맑았다.

커뮤니티 센터에 들어서 양옥균 위원장님의 자상한 안내로 홍보관, 교육관, 창작관, 공연장 등을 둘러보며 주거와 문화가 복합된 문화마을은 주민 주도적인 참여와 노력으로 일궈낸 아름다운 마을임을 알게됐다.

본격적인 시화마을 소개는 안병국 선생이 맡았다. 지극히 평범했던 골목길은 그간 주민들의 땀방울과 노력으로 멋진 문화 공간이 됐다. 산뜻한 벽화와 학생들의 재치있는 그림, 그리고 애교스럽게 손짓하는 문패, 평소 좋아하는 시를 자기집 담벼락에 붙여 집집마다 아름다운 시어들이 가득했다.

소소한 시어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뜻밖에 고향 후배 문인화와 동인 선배 문인의 작품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들이 지역에 꽁꽁 숨어있는 게 아쉬워 한국문인협회가 앞장서 곳곳에 낙후된 마을을 찾아 일회성이, 아닌 마을 행사를 펼쳐보면 어떨까 잠시 소망해보았다.

삭막한 도시 공간이 시화마을로 탈바꿈한 덕에 아이들이 시와 그림과 함께 뛰놀고 돌 돌 흐르는 물소리 따라 콧노래 부르며 또 다른 내일, 아름다운 시와 그림을 그려가며 살아가면 좋겠다.

지역 문인화의 거목 금봉 박행보 선생의 작품이 전시된 금봉미술관은 입구부터 먹향 머금은 육자배기 가락에 고수의 추임새처럼 끊길 듯 휘어질 듯 사그락거리는 댓닢바람이 시원했고 대작인 풍죽그늘이 한가로웠다.

시화마을을 떠나며 시 한편이 읊조려본다. ‘한 시대가 걸었던 그 길/ 빛고을 광주의 詩畵마을/아파트 담장엔 詩와 그림으로 옷을 입히고/허물어진 방음벽 사이로 이웃과 마주하며/낡은 대문에 방긋 맞아주는 문패/지난 흔적들에 멈춘 조형물의 울림/도랑물 흐르는 산책로에 詩畵와 만나/구름에 실려가듯 너와 나 손잡고/시대를 앞 선 문화동이 문화를 선도하며/넉넉한 예향의 시화에 젖어/봉의 맑고 굵직한 풍죽 그늘에 쉬어 간다’

시화마을을 뒤로하며 시인으로 아쉬움도 남았다. 오랜 풍파에 퇴색돼 상처로 몸살 앓는 벽화들, 계절보다 웃자란 나무와 잡풀에 덮여 가려진 시화들을 보니 하루쯤 팔 걷어붙이고 풀이라도 베어주고 싶었다.

곳곳에 설치된 작자 미상의 조형물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며, 귀한 작품들이 고철이 될 위기에 빠지는 등 수명이 다한듯해 마음 아팠다. 특히 시화마을에 시비(詩碑)가 없어 더욱 안타까움이 컸다.

삭막한 도시 공간에서 아름다운 시와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시화마을. 예향답게 아이들 소풍 장소에서부터 젊은 학생들의 문화탐방 코스로, 더 나아가 문인들의 시화전과 낭송회 등 많은 문학 기행이 열리는 공간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여기에 주변 볼거리, 먹을거리, 토산품 판매까지 어우러진 멋진 광주시 문화동 시화마을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