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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귀임 주부·광주시 남구 월산동] 영암 월출산에서 전사하신 우리 오빠

2016. 07.12. 00:00:00

남편의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기 위해 남부 경찰서로 갔다. 정문 앞 현수막에 ‘보훈은 살아있는 사람의 책임, 호국은 우리 모두의 의무’란 글귀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동시에 가슴 한 쪽이 시리면서 큰오빠에 대한 밀려오는 슬픔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적셔졌다.
난 큰오빠 얼굴이 기억이 잘 안 난다. 너무 어려서 봤기 때문이다. 이름은 조영남이시고 인물이 출중한 분이라고 했다. 6·25전쟁 때 보성군 회천지서에 근무 중 영암 월출산에 파견돼 적군과 대치하다가 전사하셨다. 초등학교 때 전해들은 이야긴데 월출산에서 함께 파견근무하다 탈출한 동료 한 분이 집에 찾아 오셔서 무릎 꿇고 울면서 “혼자만 살아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개죽음 당하지 말고 함께 탈출하자고 아무리 졸라도 그럼 이 나라를 누가 지키겠냐며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고 전했다.
장남이 전사하자 엄마가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월출산을 미친 듯이 헤매셨다. 온 산을 뒤덮은 시신이 뒤엉켜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핏물이 골짜기를 타고 흘려 내렸다니 눈뜨고 못 볼 참상이 아닌가! 몇날 며칠 시신을 찾으려고 헤맸지만 끝내 못 찾고 결국은 흙 한 줌을 떠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경찰묘역에 모셨다.
당시 나는 어린아이여서 국립묘지에 가보진 못했다. 좀 더 크면 꼭 큰오빠를 찾아가보겠다고 다짐했건만 지방에서 서울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초등학교 교사 근무시절, 모범여교사로 뽑혀 선진지 시찰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동작동 국립묘지에도 들르게 되었다. 경찰묘역에서 묘비에 새긴 ‘조영남’ 이름을 본 순간 눈물이 왈칵 솟았다. 나라위해 목숨 바치신 큰오빠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민족상잔의 아픔이 밀려와서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 오빠는 결코 개죽음을 당한 게 아니다. 숭고하게 희생했다.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즐비하게 드러누워서 끝없는 행렬을 이어가고 있었다.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꽃다운 나이에 꽃봉오리를 제대로 피우지도 못한 채 피끓는 청춘을 나라위해 몸바쳐서 우리의 반만년 역사를 굳건히 지킨 것이다.
어릴 때 엄마가 밭을 매면서 흥얼흥얼 한을 토해 내시던 피끓는 절규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자식을 그리워하는 절절하고 애끓는 목소리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렇게 부모님은 큰오빠를 가슴에 묻고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자식이 부모 앞에 먼저 간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정말 못할 짓이다.
호국보훈의 달이 지났지만, 우리 민족을 위해서 고귀한 목숨 바쳐 나라수호에 희생양이 된 호국영령들에게 우리 모두가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6·25 전쟁은 남북의 이념갈등이 빚어낸 전쟁으로 우리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최악의 아픔을 겪게 했다. 다시는 어린 새싹들에게 천추의 한을 남겨선 안 될 것이다.
큰아버지 아들로 입양된 친정 둘째 조카가 해마다 6월25일에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난 큰오빠의 제사를 지낸다. 전쟁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부모님과 만나 오순도순 못다한 정 나누시며 행복하게 사시길 빈다.
오늘따라 부모님과 큰오빠가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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