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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보다 밤이 더 황홀한 ‘동양의 유럽’
‘문명의 교차로’ 중국 상하이

2015. 11.26. 00:00:00

화려한 미디어 아트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상하이 야경.

상하이는 문명의 교차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우선 첫 인상은 전혀 중국답지 않다는 점이다. 고층빌딩이 워낙 많은 탓에 마치 홍콩의 도심을 보는 것과 같다. 고층 건물들이 워낙 많은 탓에 현대 고층 건물의 박물관 같다는 느낌을 준다.
원래 상하이는 18세기까지만 해도 중국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어촌이었다. 제국주의 세력은 이를 눈여겨봤다. 침탈의 전략기지로 여긴 것이다. 상하이 고층 숲속에서도 붉은 벽돌로 지어진 유럽풍 근대 건축물이 많이 있는 이유다. 영국 등 서구 열강은 상하이의 물길을 주목했다. 상하이가 내륙으로 물길로 이어진 천혜의 수로였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뱃길로 4박5일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륙 서부의 최대도시 쓰촨(四川)성의 충칭(重慶)까지 이어진다.
‘중국속의 유럽풍’으로 유명한 곳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상하이 신천지(新天地)도 그런 곳이었다. 중국어로 ‘신티엔띠’로 불리는 이 곳은 상하이 제1의 번화가인 남경로(난징동루)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상하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르는 명소라는 말을 실감할 만큼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걷는 게 아니라 인파에 떼밀려 발걸음을 옮겨야할 정도.
신천지 중심가는 새로운 세상이다. 파리의 노천카페나 뉴욕의 맨하튼 거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이국적인 풍경이 발길을 붙들었다. 아름다운 건물과 거리에 매료돼 노천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는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의 모습이 일상이다.
상하이 신천지는 원래 프랑스의 조계지였다. 1842년 난징조약 이후 개방의 한복판에 선 상하이는 당시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의 조계지였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신천지 역시 옛 프랑스 조계지였던 타이창루와 싱예루 일대의 19세기 스쿠먼 양식의 건축물을 현대에 맞게 리모델링한 거리다. 지난 1999년 홍콩의 루이안(瑞安)그룹은 약 1억7000달러를 투자해 3년간 중국식과 서양식을 조합한 퓨전 스타일의 쇼핑타운으로 탈바꿈시켰다. 공사가 끝난 후 거리 풍경이 중국의 전통문화와 너무 달라서 신천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인사동거리나 광주 예술의 거리와 비슷하다. 이 곳에는 뉴욕타임스가 세계 10대 레스토랑으로 선정한 ‘팅타이펑’(Ting tai Fung)이 들어서 있고 차없는 거리로 지정돼 매일 저녁에는 다양한 공연과 볼거리들이 펼쳐진다.
황푸강은 상하이를 대표하는 금융지역인 푸동(浦東) 지구와 와이탄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황푸강의 야간 유람선을 타면 빌딩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둥팡밍주타워(東方明珠塔), 진마오다사(金茂大厦), 궈지후이중신 등 푸둥지구의 고층건물과 와이탄의 건축물 등의 야경을 볼 수 있다. 푸둥지구를 대표하는 둥팡밍주타워는 높이 468m의 TV수신탑으로 서울타워의 2배 높이이며 진마오다사는 420.5m로 중국에서 가장 높은 호텔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탑으로 순수한 중국자본과 기술로 1994년 10월 1일에 완공됐다. 탑 98m 지점에 실외전망대, 267m 지점에 레스토랑, 그리고 350m 지점에 전망대로 구성돼 있는데 350m 지점의 전망대까지는 엘리베이터로 40초만에 도착한다.
낮에 하늘을 찌를듯 솟아있던 고층건물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대신, 화려하고 아름다운 미디어 아트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다.
와이탄은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 강제로 개항하게 된 상하이에 19세기 중반부터 외국인들이 모여살며 형성된 곳이다. 당시 뉴욕에서 유행했던 아르데코 양식의 건축물들이 강을 따라 늘어서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산책로로 정평이 나있다. 야간 유람선을 타고 본 상하이의 모습은 낮시간 지상에서는 미쳐보지 못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신천지에는 한국인들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구심이었던 상해 임시정부 청사가 있기 때문이다. 신천지 근처 마당로의 후미진 골목에 자리하고 있어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지나칠 뻔 했다. 아마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을 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919년 4월부터 1932년까지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됐던 3층짜리 벽돌건물에는 김구 선생이 즐겨 보던 서적과 가구,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1층에는 회의실과 주방, 2층에는 임시정부의 집무실과 침실이 있다. 3층으로 올라가면 정부요인 숙소와 임시정부의 활동모습, 주요인사들의 사진과 자료들이 보관된 전시실을 만나게 된다.

/상하이=윤영기기자 penf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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