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를 ‘쏘주’나 ‘쐬주’라고 말해야 술맛이 난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짜장면을 자장면이라 말하면 밥맛이 달아난다고 하는 이들도 많았다. 다행히 짜장면은 사전에 올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 자장면이 표준어라고 오랜 세월 아무리 강요해도 끝내 말을 듣지 않은 우리 국민들의 위대한 항쟁(抗爭)의 결과다.

짜장면의 원어는 ‘짜장미엔’(炸醬麵)이다. 한데 외래어를 표기할 때는 된소리를 피하는 규정이 있고 그게 중국어에까지 적용된 것이 1989년이다. 이후 20여 년 동안 우리는 아비를 아비라고 부르지 못했던 그 누구처럼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해 왔다. 그리고 2011년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자장면이 아닌 짜장면이라는 제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짜장면과 함께 복수 표준어에 오른 말이 있으니 바로 ‘먹거리’라는 단어다. 이 말은 짜장면과는 달리 역사가 길지 않다. 1975년 배달말학회에서 일본말 ‘식량’(食糧)에 대비되는 우리말로 먹거리를 제시하면서 처음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 조어법(造語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국어학자들에게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나 또한 그런 이유로 먹거리의 허용을 반대하는 글을 쓴 적도 있다. 먹거리가 말이 되면 읽을거리를 ‘읽거리’로, 씹을거리를 ‘씹거리’라 하는 것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원칙은 지켜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그때의 생각이었다. ‘말글의 원칙’이 바로 문법일진대 법칙에 예외가 많아지면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도 애를 먹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도 있었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먹거리라는 말에 환호했다. 국립국어원도 결국 손을 드는 수밖에 없었다. 나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원칙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더 이상 항거할 수 없었던 것은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널리 쓰게 되면 사투리도 표준말이 될 수 있다. 귀신도 모르지만 전라도 사람들은 다 알아먹는다는 ‘거시기’란 말이 바로 그런 예에 해당된다. 거시기는 원래 대표적인 전라도 사투리였지만 온 국민이 즐겨 쓰면서 지금은 버젓이 사전에 올라 우리말을 풍성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사투리도 표준말로, 틀린 말도 맞는 말로, 그렇게 바꿀 수 있는 곳이 국립국어원이란 곳이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그동안 부정적인 표현에만 사용이 가능하던 부사 ‘너무’를 긍정적인 표현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예전엔 ‘틀린’ 표현으로 교열 대상이었던 ‘너무 예쁘다’ ‘너무 좋다’는 말도 이제 더 이상 고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너무’는 원래 ‘너무 어렵다’ ‘너무 위험하다’ 등처럼 부정적 의미와만 어울려 쓰이는 말이다. 따라서 긍정을 강조하는 말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너무 크다’고 하면 너무 커서 좋지 않다는 뜻이요 ‘너무 많다’ 하면 역시 너무 많아서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이 너무 좋아’ ‘오늘따라 당신이 너무 예뻐’ 등 언중(言衆)은 ‘너무’를 긍정적인 의미로도 폭넓게 써 왔다. 심지어 ‘너무’ 하나로도 모자라 ‘너무너무 좋아’ ‘너무너무 예뻐’ 등처럼 단어를 포개 쓰기까지 했다.

마침내 국립국어원도 ‘너무’가 ‘너무 많이’ 쓰이는 언어 현실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일정한 정도나 한계에 지나치게’에서 ‘일정한 정도나 한계를 훨씬 넘어선 상태로’라고 뜻풀이를 바꿈으로써 부정과 긍정, 모두에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국립국어원의 처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 짜장면의 허용은 경직된 사고(思考) 때문에 너무 늦었던 반면 ‘너무’의 경우 유연한 사고를 핑계로 너무 성급하게 허용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것은 우리말에 ‘아주’나 ‘정말’ ‘매우’ ‘무척’ 등 긍정을 강조하는 어휘가 많은데다 ‘너무’를 남용한다면 이들 어휘는 언젠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잘못된 표현이라도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면 표준어로 인정된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잘못된 우리말을 쓰면서도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언젠가 표준어가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는가 말이다. 이러다가는 회자(膾炙:좋은 일로 남의 입에 오르내림)와 구설(口舌:좋지 않은 일로 오르내림), 타산지석(他山之石:부정적인 대상을 통해 교훈을 얻음)과 귀감(龜鑑:거울로 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 장본인(張本人:어떤 나쁜 일을 꾀하여 일으킨 사람)과 주인공(主人公:어떤 좋은 일에서 중심이 되는 사람) 같은 경우도 애써서 누가 가려 쓰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국립국어원이 ‘몸매가 착하다’ ‘가격이 착하다’ 등에 대해서도 허용할 뜻을 내비쳤다는 사실이다. “짜장면을 자장면이라 그리 오랜 세월 고집하더니 ‘몸매가 착하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쓰였다고 넙죽 받아들인단 말인가. 짜장면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어느 트위터 사용자의 말이 사태의 정곡(正鵠)을 찌른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세월 따라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언어의 가변성(可變性)은 어느 정도 존중해야 하지만 그 전에 우리말을 바르게 쓰게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어문 규범과 언어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어서 불편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수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유행어와 표준어마저 구분하지 못한다면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너무’의 용법 확대와 ‘착한 몸매’ 식의 표현 인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한’ 처사라는 생각이다. 갑자기 김수희의 노래 ‘너무합니다’가 떠오르는데, 우리말 우리글을 아름답게 가꾸고 바르게 지켜야 하는 곳이 바로 국립국어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