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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와 언론
강 대 석
광주일보 독자위원회 위원

2014. 12.29. 00:00:00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송년회 술자리에서 심심찮게 회자 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록위마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환관 조고(趙高)가 어리석은 호해(胡亥)를 황제로 옹립하고 자기의 권위를 시험하기 위해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했던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윗사람을 농락해 권력을 휘두르는 행위나 사실이 아닌 것을 억지로 우겨 강압으로 인정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언론사에서 수집한 금년도 지록위마의 순위를 보면 1위가 ‘국정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은 안 했다’(원세훈 판결문), 2위가 ‘공문서 위조는 했지만 간첩조작은 아니다’(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3위는 ‘56조원 빚은 남겼지만 실패한 자원외교는 아니다’(경제부총리) 4위가 ‘KBS에 협조요청은 했지만 언론통제는 아니다’(청와대) 등이다. 정말 개그도 이런 개그가 없다. 올 한해를 개그 같은 현실 속에서 살았다는 것이 또한 우습다.
지록위마의 행위를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위에서 보듯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인이나 법조인 등 권력이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적시하고 비판하여야 할 언론이 본래의 소임을 저버리고 사실의 전달에만 급급한 책임도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이 절대 왕정 아래서 5백년을 버틴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절대 권력에 대하여 목을 내놓고 간언할 수 있는 언관제도라고 할 수 있다.
언관은 3사 즉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을 말하는데 여기에 속한 관리들은 지금과 같은 언론기관이 없던 시대에 일종의 국립언론기관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 임무는 주로 왕권을 견제하고 바른 정치를 하도록 간언하는 일이었다.
일례로 연산군일기에 의하면 사간원 정언(정6품) 권균과 사헌부 지평(정5품) 이자견이 묘(廟)를 옮기는 것을 반대하자 화가 난 연산군이 권균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당장 국문하라고 하명한다. 이에 이자견이 나서 “대간의 직을 둔 것은 일을 말하라고 한 것인데, 혹 합당하지 않을지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을 논한다 하여 옥에 잡아 가둔다면 사람들이 장차 입을 다물어 언로(言路)가 막힐 것이니, 성치(聖治)에 손상이 있을까 걱정됩니다.”라고 거들었다. 왕은 “대간(臺諫)의 말도 들을 만해야 듣는 것이지 만약 안 들으면 매양 언로가 막힌다고 말한다. 대간 역시 신하인데, 꼭 임금이 그 말을 다 듣는 것이 옳은가? 그렇다면, 권력이 위에 있지 않고 대각(臺閣)에 있는 것이다.” 하였다.(연산군2년 5월6일), 조선시대 언관들의 간언이 얼마나 집요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언관들이 목을 내놓고 간언하는 언관(言官)제도가 있었기에 절대 권력이 부패하지 않고 5백년을 버텼던 하나의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요즘은 어떤가? 연말 청와대 문서유출 정국에서 보듯 역린을 건드린 공직자는 직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언관(言官)의 역할을 당연히 언론이 맡아야 한다고 본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언론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 중에서 선택을 하라면 주저 없이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고 했다. 이 말은 언론의 자유와 함께 민주주의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이야기한 것이다.
공직사회의 내부 간언과 견제가 사라진 지금 국민은 언론의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발로 뛰어 진실을 캐내고 꺾이지 않은 양심으로 정론 직필 하는 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대다. 혹자는 언론의 자유를 말하지만 어둠이 있기에 촛불이 필요한 것이다. 지방언론으로서 한계는 있겠지만 광주일보가 그 중심에 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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