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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떠나 간 후 …
문순태 칼럼

2014. 08.27. 00:00:00

아침산행을 위해 집 사람과 함께 집을 나섰다. 산자락에 연분홍 상사화가 시들고, 가을의 전령사인 연보랏빛 별개미취 꽃이 화들짝 피었다.
구절초, 쑥부쟁이 꽃과 함께 통칭되는 들국화 중에서, 별개미취 꽃이 가장 먼저 가을향기를 살며시 내뿜는다. 우리 마을 70대 부부 세 쌍은 날마다 오전 6시에 마을회관 앞에 모여 아침산행을 한다.
모두 60대에 은퇴, 귀농해서 부부끼리만 살고 있다. A씨는 대학교수, B씨는 공무원, C씨는 서울에서 무역업을 했다.
20여분 쯤 헐근거리며 가파른 임도를 올라가 안개 스멀거리는 소나무 오솔길로 접어들자, 상큼한 솔향기가 바람에 실려 콧속을 간질인다.
일행은 40분쯤 걸어 산등성이 펀펀한 소나무 숲속 쉼터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 다음 ‘노인들의 산상 시사토론’을 시작한다.
아침마다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토론 주제는 세계정세에서부터 국내정치, 경제, 사회문제 외에 손자들 교육, 건강, 죽음, 음식, TV연속극, 마을 이야기 등 다양하다.
어제는 미국 퍼거슨에서 10대 흑인청년이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일로 벌어진 흑인들 시위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한동안은 매일 유병언의 의문사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었다.
오늘은 자연스럽게 ‘교황이 다녀간 후’가 주제로 정해졌다. 6명 모두 가톨릭 신자다.
A:“교황님 계실 때는 온 나라가 평화로웠는데 비행기 뜨자마자 시끄러워지고 있어요.”
B:“교황님 계실 땐 행복했어요. 비신자들도 교황님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데요.”
F:“세월호법 때문에 정국이 막혔어. 진실 밝히자는데 유족들 요구 좀 들어주면 안 되나?”
D:“박영선 대표가 너무 짠해요. 사면초가가 되었다니까요. 박영선 대표를 도울 생각은 않고 흔들려고만 하다니. 박영선 뜨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럴까요? 중진들은 뭣 하고 있데요?”
E:“문재인은 왜 그러고 있지? 단식하면서 정국 풀 해법 찾고 있나?. 정치력을 보여줘야지.”
B:“새누리당과 청와대도 불구경만해서는 안 돼. 3자협의체에 참여해서 함께 이 난국을 풀어야지. 결국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강경투쟁으로 정치가 더 꽉 막히고 있잖아.”
A:“대통령이 나서야죠. 유민아빠 죽으면 누가 책임지죠? 교황님도 다섯 번이나 만났는데. 이럴 때 자애로움을 보여주면 안 되나요. 세상에, 목숨 건 유민아빠 진정성을 의심하다니.”
F:“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교황님 말고는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고들 해요.”
C:“교황님이 할 수 있는 일이 기도 밖에 뭐가 또 있겠어요? 결국 우리가 해결해야죠.”
C:“정홍원 총리는 어디 갔나? 왜 최 부총리가 뜬금없이 담화를 발표하는지 모르겠어.”
D:“그나저나, 돈 먹은 국회의원 놈들 도망 다니는 꼬락서니라니 참 한심스러웠어요.”
E:“유병언의 1번 가방에 로비 명단이 들어있을 거라는데, 검찰은 왜 찾지 않은 건지…”
A:“주말에 장례 치른다는데, 이제 여기서 의문투성이 유병언 사건도 결국 종결이구만.”
B:“남경필은 지금 출근하나요? 병영폭력 아들 두 번째 영장도 또 기각되었다면서요?”
E:“아까운 내 손자 놈들 군대 보내기가 참말로 무서워요. 대한민국 어쩌까.”
C:“유병언 사건이 잠잠해지니까 언론에서는 김수창 길거리 음란행위로 얼씨구나 하고 막춤을 추더구만. 성도착증 장애라는데 인간으로 살아갈 최소한의 체면은 지켜줘야지.”
E:“교황이 계속 한국에 계신다면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이 새롭게 변할 수 있을까요?”
그 때 소나무 숲에서 장끼 한 마리가 푸드득 날개를 치고 날자, 모두들 무 캐먹다 들킨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변을 살펴본다.
교황님이 돌아간 지금, 우리시대 정신적 리더였던 김수환 추기경의 빈자리가 새삼스럽게 크고 허전하게 느껴진다.
마을에 내려오니 90세 살치댁과 순창 댁 할머니가 추석 쇠려고 광주로 파마하러 간다면서 휘적휘적 길을 나서고 있었다. 정류장까지 30분을 걸어야 하는 두 할머니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보름달처럼 아름답다.
그러고 보니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추석 때 내려올 손자들 생각에 노인들 얼굴에도 보랏빛 꽃이 핀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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