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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과 ‘도망친 100세 노인’
문순태 칼럼

2014. 08.13. 00:00:00

서울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손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창문 너머 도망친 100세노인’이라는 영화를 감상했는데 엄청 재밌다면서, 할아버지도 꼭 보라는 것이었다.
폭탄제조 기술자 알란은 100회 생일잔치를 앞두고 요양원을 탈출, 뜻밖에 갱단의 검은 돈을 손에 넣고 도망쳐 다니면서 다이나믹한 여정을 경험한다는 이야기다.
“할아버지도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세요. 집에만 계시지 말고 알란처럼 여행도 다니세요.”
나는 올 여름에 손자 덕분에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장편소설 ‘창문 너머 도망친 100세노인’을 읽었다. 이 소설을 읽고 있다는 손자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서점으로 달려갔다.
손자는 소설을 읽고 나면 어김없이 내게 시시콜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손자는 소설가인 할아버지가 이 세상 모든 소설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할아버지 노릇하기 정말 힘들다.
‘창문 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은 늙어서 삶의 여운을 갖게 해주는 글로벌 베스트셀러다.
주인공 알란이 세계여행을 떠나며 벌이는 좌충우돌적인 사건에 휘말리는 등 예측불허의 경험을 한다.
많은 일을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삶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한다.
지금 노인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20년에는 노인이 7명중 1명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 때쯤이면 누구나 요양원의 비닐 위에 손발이 묶인 채 누워, 이상한 주사를 맞으며 아무 생각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나면 ‘이대로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
아름다운 인생의 종말을 맞기 위해서는 노인에게도 열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은 열정이 살아있을 때만이 생존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화에서 손자에게 영화 ‘명량’을 관람한 이야기를 했다. 이순신 장군이 겨우 12척의 배로 330척의 일본 배를 쳐 부신 이야기와 함께, 목숨을 바쳐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말해주었다.
나는 ‘명량’이 예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1597년 당시 조선의 위기와 2014년 대한민국의 시대적 위기상황에서,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지켜줄 진정한 리더십의 출현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세월호 참사와 윤 일병의 죽음으로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가슴 쓸어내리며 분노하고 슬퍼하고 불안에 떨었는가. 세월호 참사 120일째인 오늘까지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 처벌과 관피아를 척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윤일병 사건으로 드러난 수많은 의문의 죽음에 대해서도 여전히 진실이 은폐되고 있다.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렇듯 불신과 불통 사회에서, 우리가 이순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기희생으로 국민들을 보호하고 부하를 사랑하는 진정한 리더십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물속에 가라앉은 배 속에서 살려달라고 외쳐대는 소리를 외면한 책임자들.
참고 있으면 윤 일병처럼 맞아죽고 폭발하면 총을 쏘는 임 병장이 될 수밖에 없는 원시적 병영문화가 엄존한 대한민국. 이 현실에서 진정한 리더십의 가치는 진보와 보수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솔선수범과 책임질 줄 아는 것임을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이다.
“할아버지 왜 지금은 이순신 같은 장군이 없어요? 이순신 같은 장군이 있으면 좋을텐데…”
손자의 물음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손자는 영화 ‘도망친 100세노인’관람객 대부분이 아이들이라고 했는데 ‘명량’은 40∼50대와 노인들이 많았다.
두 영화에 대한 손자와 할아버지의 관점은 무엇일까. 두 영화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은 ‘두려움’ 이다.
‘도망친 100세노인’에서 알란은 “세상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고 ‘명량’에서 이순신은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손자는 영화를 보면서 할아버지가 알란처럼 즐겁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랐다면, 70대의 나는 이순신 같은 지도자가 나와서, 손자들 세상에서는 세월호 참사나 군부대 안에서 맞아죽는 일이 없는,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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