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포츠/연예
오피니언
weekend
‘루저’ 발언 마녀사냥

2009. 11.17. 00:00:00

최근 때아닌 루저(loser·패배자) 논쟁이 온·오프라인을 달구고 있다. “키가 180이 되지 않는 사람은 루저다”라며 KBS 2TV 오락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미수다)에 출연한 한 여대생 발언이 수일 동안 신문, 방송 등은 물론 인터넷을 도배하는 등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루저 발언의 패러디도 등장하고 있다. 이름하여 ‘루저의 난’.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는 패러디는 프로필 상 키가 180㎝ 되지 않은 유명인들 이름에 루저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필 상 키가 171㎝인 미국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는 ‘톰크 루저’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마틴 루터 킹은 ‘마틴 루저 킹’, 177㎝의 빅뱅 승리는 ‘패배’로 바꿔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 같은 인기(?)와 달리 루저 발언이 논란을 빚자 미수다의 제작진 전원이 교체됐고 프로그램의 존폐위기까지 대두됐다. 급기야 최근 30대의 남성이 “키 작은 남자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KBS를 상대로 1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모두 11건의 손해배상 청구가 접수됐다.
물론 루저 발언은 잘못됐다.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발언을 편집 없이 그대로 방송으로 내보낸 제작진이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친구들과 뒷담화로나 해야 할 말을 수만명이 시청하는 공중파 방송에서 당당하게 발언한 그 여대생도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네티즌들이다.
루저 발언 이후 당사자인 여대생은 네티즌들의 ‘마녀사냥’에 걸려 말 못할 고통을 겪고 있다. 네티즌은 여대생이 방송에서 밝힌 실명과 학교 및 소속학과 등 신상정보를 토대로 과거 사진까지 들춰내는 등 지나친 사생활 침해를 가하고 있다. 또 일부 네티즌들은 ‘루저 원정대’를 자칭하며 미수다에 출연한 여대생이 재학 중인 학교에서 모일 것을 제안하며 구체적인 행동지침까지 만들고 있을 정도다.
이미 과거 ‘개똥녀’ ‘된장녀’ ‘군삼녀’ 등을 통해 ‘마녀사냥’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정작 공직자들이 자주 범하는 문제성 발언에 대해서는 크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여대생 한 개인에 비난을 퍼붓는 것은 만만한 상대에게만 가혹하게 구는 ‘소아적 행태’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터지면 한차례 광풍에 휩쓸린 후 ‘이제 마녀사냥은 그만하자’라는 때늦은 반성이 네티즌들 사이에 제기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비슷한 마녀사냥이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루저 발언은 제작진과 여대생에게만 전적으로 책임을 지울 수 없다. 일부 네티즌과 부화뇌동하는 일부 언론들, 그리고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수수방관한 우리 모두에게도 잘못은 있다. 또 다른 이름의 ‘인격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가해자는 바로 우리 자신임을 인식해야 한다.
/ 강필상 여론매체부 기자 kps@kwangju.co.kr

기사 목록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