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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하키‘파이터즈’
빙판 위에 싹트는 사나이들의 우정

2008. 03.03. 15:21:35

광주지역은 동계스포츠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마땅히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지원도 부족하다. 게다가 아이스하키는 영화 속에서나 봄직한 익숙지 않은 스포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광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이스 하키팀은 ‘파이터즈’ 가 유일하다.
‘파이터즈’가 아이스하키팀의 면모를 갖추고 염주 빙상장에서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3달째.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45세의 최고령 김성철씨 부터 27세의 혈기 왕성한 이태우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30여명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회원들은 훈련량이 부족하지만 마땅한 연습 공간이 없어 염주 빙상장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1차례 연습을 하는데 만족하고 있다. 그나마도 3년 여의 노력 끝에 겨우 아이스 링크의 정기 대관을 성사시킨 것으로 이들에게 90분은 황금과도 같은 시간이다.
주말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연습장을 찾은 회원들은 왕복달리기로 훈련을 시작한다. 쇼트트랙 팀이 빙상장을 사용한 뒤라 얼음판이 움푹움푹 패여 생각보다 쓱쓱 미끄러지듯 나아가질 않는다. 1주일에 겨우 한 번 얼음판을 나서는 터라 몸도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지만 얼음판에 나설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회원들은 힘이 난다.
얼음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늦겨울의 칼바람보다 더 매섭지만 몇 번 트랙을 오가자 회원들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힌다.
몸을 푼 선수들은 기술을 연습에 들어간다. 선수들에게 기술을 설명 하는 코치와 능숙한 스케이팅으로 시범을 보이는 조교는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이다. 아이스하키의 본고장 캐나다에서 온 이들은 이곳에서 회원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고향의 향수를 달래고, 회원들의 실력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기술에 대한 설명을 할 때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답답한 경우도 있지만 능숙한 시범 한번이면 모두 ‘아∼’라는 말을 절로 쏟아낸다. ‘스포츠’라는 만국 공통어가 있기 때문에 회원들 사이에는 전혀 어색함이 없다. ‘파이터즈’의 외국인 회원 수는 5명에 이른다.
2년 전 미국에서 온 브랜든(28)은 한국에 와서 처음 아이스 하키를 접했다. 그는 “무주에서 스키도 타보고 다른 운동도 많이 해봤지만 요즘 스피드 넘치는 아이스 하키의 매력에 빠졌다”며 “광주 지역에서 쉽게 동계 스포츠를 접할 수 없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곧잘 엉덩방아를 찧기고,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기도 하지만 회원들의 날렵한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다. 문필영(34) 팀장을 비롯한 30여명의 회원은 인라인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인라인 하키를 했던 ‘스포츠 맨’이다.
지난 2000년 아이즈 인라인 동호회를 통해 인라인 하키를 시작했던 이들은 2004년도에 대한인라인롤러연맹(KRSF)대회 준우승을 차지하고, 한국하키리그(KHL)대회 남부리그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전국적인 강호로 명성을 떨쳤다. 문 팀장은 국가대표로 선발돼 국제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이처럼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운동 환경은 좋지 못했다. 연습할 장소와 장비가 부족해 1년간 고전하다, 송정리 롤러스케이트장을 정규대관해 겨우 하키팀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광주 지역에 인라인 하키인구가 적어 제대로 된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장거리 이동을 밥 먹듯 해야했다. 2007년에는 송정리 구장 보수 공사로 8개월 가량 운동을 쉬어야 했고, 결국 구장이 매각 되면서 갈 곳을 잃게 됐다.
하키가 좋아 모인 이들은 연습을 위해 평지가 있는 곳을 찾아다녔지만 관리자에게 쫓겨나기 일 수였고 열악한 조명과 환경에 운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키를 계속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아이스 하키였다.
박경남(31) 주장은 “처음 하키를 시작했을 때의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광주 지역의 열악한 운동 환경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지금도 안전 시설이 되지 않은 빙판장에서 힘겹게 하키를 하고 있지만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저변 인구가 적은 생활 체육 종목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미비한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내년 봄 아이스 링크장의 보수 공사가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에 회원들은 그나마 희망을 갖고 있다.
문필영 팀장은 “인라인 하키도 스피드가 바탕이 되는 운동이긴 하지만, 아이스 하키는 이보다 좀 더 섬세하고 동적이다”며 아이스 하키의 매력에 대해 설명했다. 빠른 전개로 스릴이 넘치며, 남성적인 운동이라는 강한 면모도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운동이 좋아서 뭉친 사람들이지만 ‘파이터즈’는 취미 이상의 실력에도 관심도 많다. 인라인 하키팀 시절 다른 지역 팀들이 대결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약체 였지만 급격한 실력 향상으로 전국적인 강팀으로 이름을 떨쳤었던 만큼, 아이스 하키에서도 ‘파이터즈’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다.
문 팀장은 “최근 광양에 전남 최초 국제규격 실내빙상장이 문을 열여서, 전주·여수의 팀들이 연습을 시작해 부쩍 실력이 늘어 긴장하고 있다”며 “인기가 적은 레포츠이지만 동호인들이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이 아이스 하키를 고급 스포츠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초보자들도 30∼40만원 선에서 장비를 장만해 쉽게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장만해야 할 장비는 아이스 스케이트, 헬멧, 안면보호대, 숄더 패드, 글러브, 엘보우 패드, 쉰가드, 팬츠로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스케이트의 경우 초보자들은 15∼20만원 선에서 구입하는 게 좋다. 운동 특성상 마찰력이 적어 사용기간도 길다. 스틱은 3∼4만원 선에서 구입 가능하다.
박 주장은 “중고 시장도 활성화 되어 있고, 신입 회원들을 위해 장비를 물려주는 회원들도 있어 큰 부담없이 아이스 하키를 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허허벌판에서 인라인 하키를 시작했던 이들은 또 다른 파이터즈 성공 신화를 위해 매주 토요일 차가운 빙판을 누비며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다.
/김여울기자 wool@kwangju.co.kr
/사진=나명주기자 mjna@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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